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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선데이 Interview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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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언어의 힘과 통찰력의 중견...‘야전사령관’ 전남지사로 변신할까?

 정치 입문 10년째인 신문기자 출신 이 정치인은 명료한 언어 구사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왔다. 느지막이 올라선 정치무대에서 대변인 직책을 다섯 번 지낸 사실은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웅변이 아니면서 웅변보다 더 힘이 센 그의 언어, ‘사실의 힘’에 대한 확신이 그 힘의 원천일 터다. 뚝심과 유머감각이 얹어져 빛난다.

 기자로서 체득한, 말이나 글이 쉽고 짧아야 대중과 통(通)한다는 그의 생각은 단순하지만 예사롭지 않다. 주먹 펴면 장미꽃 화사하고, 다시 펴면 새가 파닥거리는 마술사의 공력마냥 오래고 험난한 단련의 결과가 그런 언어를 낸다. 그는 기자 일을 소명(召命)처럼 열심히 지었던 ‘쟁이’였다. 그의 단문(短文)은 이런 관록을 보듬는다.

 좀처럼 그는 “아니오.”라 하지 않는다. 해야 할 때도 부러 “그렇지요. 그런데...”라고 한다. 그의 ‘정치어법’이다. 연출 방식은 부드럽되, 말의 내용은 단호하다. 남의 말을 잘 듣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달변으로 소문난 ‘이낙연표 언어’의 비결이다.

 이런 이력이 ‘야전사령관’으로의 변신에 어떤 영향을 줄까? “결심한 바는 아니지만,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위원장으로 일하며 얻은 통찰력으로 ‘농업 중심지’인 전남의 미래상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었다는 것. 또 농업의 가치 또는 파괴력에 관해 ‘여러 분’들과 견해가 다른 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라고 말했다.

 대화에서 강한 어조(語調)로 ‘정말로’라는 말을 거듭하는 대목은 그가 강조하고 싶거나 절실하다 여기는 부분이다. 가령 자유무역협정이나 수도권 규제 철폐에 관한 얘기에서 그는 ‘정말로’를 6~7번 되뇌기도 했다. 개헌(改憲) 주제에서도 그랬다. 이 말은 그의 관심사, 고민을 읽을 수 있는 힌트겠다.

 그는 낭만파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적절히 인용하는가 하면, 정태춘의 ‘촛불’과 양희은의 ‘한계령’을 ‘18번’으로 제시한다. 문학적인 기질이 풍부했다고 기억하는 이들도 꽤 있다. <에디터 강상헌>

[이낙연 의원과의 대담] “국민의 뜻을 모아 꽃 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정치지요.”

             대담 후 이 의원과 강상헌 편집위원, 배석취재기자 정지환 편집국장 기념사진

 전남 함평군 영광군 장성군의 3선 민주당 이낙연 의원(57세)은 정치를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 비유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대목이 은유적으로 설명하듯, 정치수요자이며 세상의 주인인 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가지런하게 갈래 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정치의 본디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언론인으로서 배웠던 정치를 현장에서 익혀온 그가 말하는 ‘정치’는 어떤 것일까.

-강상헌 여의도통신 편집위원: 정치기자의 일과 정치인의 일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낙연 민주당 의원: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자와 정치인의 일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 일은 날마다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인데 비해 정치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판단을 유보하고 협상과 같은 과정으로 문제를 숙성케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점이 다르지요. 노동 강도(强度)로는 기자일이 힘들겠지만, 정치의 과정에 드는 품은 그 큰 영향력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강상헌 위원: 최근 농협법 개정과 관련해 이 의원님이 위원장인 농림수산식품위원회가 ‘당론’이 아닌 위원회 구성원들의 연구와 토론만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위원장의 정치력’이 크게 작용한 것입니까?

▲이낙연 의원: 천만의 말씀입니다. 위원회 구성원들과 정부 농협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지요. 다만 저는 여야 지도부를 찾아 위원회가 처리할 수 있도록 당론으로 끼어들지 말아줄 것을 간곡히 청했습니다.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 10년째 정치활동을 하면서 드물게 ‘정치다운 정치’를 맛봤다는 생각도 했지요. 스트레스요, 왜 없었겠어요?

-강상헌 위원: 상을 많이 받는 의원으로 꼽히지요? 공약(메니페스토)을 잘 지켰다, 국정감사를 성실하게 했다는 등의 칭찬인데 말하자면 국민(유권자)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은데 대한 보상인 셈이지요?

▲이낙연 의원: 상 받으면 좋지요. 보람도 느끼고요. 한편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하고 내 행동을 톺아보고 계시는 국민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 약속은 생명과도 같은 귀중하고 무거운 것입니다. 오래 전 가볍게 던진 말을 어떤 이는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무섭기까지도 하고요. 못 지킬 약속을 하지 않는 것, 이를 분별하는 것도 정치의 한 갈래일 터입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으로 상을 받았다는 얘기는 그 일 조차 안하는 의원도 있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요즘 소통(疏通)이나 영어단어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말과 생각이 얽히지 않고 서로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의 표현이겠다. 나의 ‘가나다’가 다른 이에게도 같은 ‘가나다’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번 대변인을 맡았을 때 그의 언어구사는 ‘소통 원활’의 표본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의 표적이었다. 비결(秘訣)이 무엇일까?

-강상헌 위원: 대화도 그대로 적으면 손 볼 데 없는 문장이 될 정도로 논리적이군요. 모호한 부분이 없어서 인터뷰하는 기자도 편합니다. 특별히 이 부분에 신경을 쓰시나요?

▲이낙연 의원: 많은 분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지요. 정치도 그렇지만 언론도 두 말할 것 없고요. 모두가 알아듣도록 말을 해야지요. 신문기사 쓰고 다듬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꼼꼼하게 챙깁니다. ‘더 쉽고 짧게’를 염두에 두면 됩니다. 여기 보세요. ‘한우의 출하를 1년 앞둔 시점부터’라는 말, ‘한우 출하 1년 전부터’로 고칩시다. ‘지배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이란 제목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농협법 개정’으로 고치고요. 어떻습니까? 뜻이 망가졌나요? 품위가 떨어졌나요?

 농협법 개정과 관련해 그는 ‘친정’인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현한 문건을 내고, 농업 부문에 관한 활발한 보도를 당부하여 최근 화제가 됐다. 언론계 농업계 등에서도 우려하는 바 크지만, 정말 우리 언론에서 제대로 된 농업 기사나 평론을 찾기 어렵다. 또 ‘내로라’ 할 전문기자 또한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렇게 농업계의 ‘소리’를 모우는 장치가 없으니 농업의 소외는 더 심해진다. 그는 ‘나라의 존망’이 걱정되는 사안으로 이를 해석했다.

             2007년 어머니와 7남매 기념사진

-강상헌 위원: 농업 없이 설 수 있는 나라가 없는 것처럼, 농업을 지켜보고 이와 관련한 논의를 주도적으로 전개할 언론인이 아쉬운 점을 서한의 형태로 발표하셨지요?

▲이낙연 의원: 주요 언론의 농업 관련 기사와 전문기자의 존재 등을 일본과 비교하면 비참합니다. 우리보다 농업의 비중이 작은 일본의 농업 언론이 활발한 것과 비교되지요. 언론사들이 농업기사를 필요로 하는 독자가 많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같은 외국의 경우를 살피시도록 권합니다. 그들은 ‘소비자 친화형’ 농업기사를 재미있게 씁니다. 농업 기사라고 하여 농민과 농업 관련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좋은 접근방법이 아니지요. 농촌과 도시의 유대를 튼실하게 합니다. 부럽습니다.

-강상헌 위원: ‘소비자 친화형’ 농업기사라는 말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이낙연 의원: 좋은 식품을 가리는 안목을 키워주는 글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그 식품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줄 수 있습니다. 도시의 소비자는 향수(鄕愁)와도 같은 농촌만이 가진 귀한 어메니티(amenity)를 동경하게 됩니다. 

 농업 농촌 농민의 3농이 모두 어렵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나라가 ‘농(農)’의 귀함을 잊으니, 대다수 국민들도 큰 본디[大本]라는 그 뜻을 잃었다. 그는 국회의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대표다. 또 농업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다.

-강상헌 위원: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뭐다 해서 농촌의 시름은 더 깊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낙연 의원: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위원회의 논의사항이 아닙니다. 우리 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지요. 혹 농업 부문의 이런 입장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이 점을 한 번만 생각하신다면 논점이 명확해 질 겁니다. 즉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농축산업 종사자들)의 양해가 있었는지요? 나라 잘 살기 위해 선생님 집 망한다면 양해하시겠습니까?

-강상헌 위원: 농업이 발달하지 않은 선진국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농업이 설 땅이 좁아집니다. 사양산업이라고 합니다. 왜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농업이 활발한데 우리는 이 모양일까요?

▲이낙연 의원: 농업은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나라와 전 국민이 그 존립(存立)을 부추겨야 하는 산업입니다. 충분하고 안전한 식량(食糧) 생산기지로서의 농업이 망가지면 국민의 목숨이 농업선진 외국에 좌지우지되는 것입니다. 값이 폭등하고, 폭동이 일어나는 외국의 상황을 보셨잖습니까? 왜 이런 미래를 읽지 못하는 것인지, 참 황당합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어렵지만 농업인들께서는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의원이 들려주는 일본의 사례 하나. 최근 일본의 금융계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농축산업과 식품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큰 점을 주목하고, 농장과 기업 등을 대출대상으로 삼기 위한 연구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첨단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는 비즈니스로부터 도시민의 정서와 식품안전 심리를 충족시키는 전통농업에까지 여러 형태가 이런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의 흐름이 농업을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강상헌 위원: 헌법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고요?

▲이낙연 의원: 나라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라가 되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가 손에 곧 잡힐 것 같습니다. 단지 정치(형태)가 이런 저력의 전개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은 저만의 걱정이 아닌 듯합니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라는 연구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아 많은 분들의 슬기를 모우는 중이지요. 경제난 때문에 동력(動力)이 좀 떨어져서 걱정입니다만.

-강상헌 위원: 개헌 즉 정부형태의 변경에 관한 관심이겠지요?

▲이낙연 의원: 그렇습니다. 현행 대통령제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뿐만 아니라 미움과 갈등까지 집중되도록 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비효율과 낭비를 없애는 것이 우선의 목표지요. 그런데 차기 대선주자들이 이 부분에 개입하려는 의도의 발언을 하는 것이 요즘 걱정입니다. 당사자들은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아야 당당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겠지요. 또 정당도 당론을 내지 말고 전문가들의 판단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신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정치인이 된 이상 자신이 속한 정당의 얼굴 또는 얼굴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그 치열한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진심인가?

-강상헌 위원: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역할모델로 삼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어떤 점을 따르고 싶은지요?

▲이낙연 의원: DJ는 공부합니다. 정책에 철학과 일관성이 있습니다. 정치를 포함한 모든 일을 감동적일 만큼 열심히 합니다. 기자에게도 손자에게도 뭔가를 얘기할 때면 그 열의가 불덩이지요. 이런 그의 특장은 열심히 배우고 싶고, 배우는 척이라도 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권력에의 의지만큼은 흉내조차 낼 수 없군요. 탓이 될 수도 있겠지만, 큰 정치를 위한 전제 아닌가요? <에디터 강상헌>

[인터뷰 스케치] 몸에 배인 '배려'와 실내 풍경, 그리고 농업

          농업현장의 이 의원. 2007년 농업박람회(전남 나주)에서 관계자들과 찍은 기념사진

 국회의사당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장실(503호)에는 4장의 풍경 사진이 걸려 있다. 방문객의 시선을 제일 먼저 붙잡는 이 큼직한 사진들에는 풍경의 지명(地名)도 붙어 있다. 경북 울진 후포항, 전남 장성 축령산, 강원 횡성 한우, 충남 서산 간척지…. 이낙연 의원이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골랐다는 이 사진에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정치적 배려’가 담겨 있다.

 “분야, 지역, 정당까지 고려해서 골랐죠. 우선 4장의 사진은 각각 농업(서산 간척지), 임업(장성 축령산), 수산업(울진 후포항), 축산업(횡성 한우) 등 상임위 관련 분야를 상징합니다. 사진을 선택하면서 영남(울진), 호남(장성), 충청(서산), 강원(횡성) 등 지역과 한나라당(횡성, 울진), 민주당(장성), 자유선진당(서산) 등 소속위원 정당이 가능하면 골고루 안배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고 보니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접시에도 다른 의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과자나 사탕 같은 ‘공산품’이 아니라 홍삼 등으로 만든 ‘농산품’이 담겨 있다. 인터뷰 도중 이 의원이 구체적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취재수첩을 꺼내들었다. 동아일보 동경특파원 출신인 이 의원은 30년째 버릇처럼 취재수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행사장에서 연설을 하거나 회의장에서 발언을 해야 할 때는 보좌진이 써주는 원고 대신 내 생각을 직접 취재수첩에 적은 뒤 뜯어서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고 갈 때가 많죠. 그래서 용수철이 있는 취재수첩이 편리하고 좋아요. 4개의 내 바지 주머니에는 수첩을 비롯해 지갑, 핸드폰, 손수건이 항상 들어가 있는데, 수첩은 내 하반신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여의도통신 정지환 편집국장>

[이낙연 의원 프로필]

* 학력사항

광주제일고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경력사항
동아일보 동경특파원, 정치부차장, 논설위원, 국제부장 / 민주당 남북특위 간사 / 민주당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장 / 민주당 기획조정위원장 / 민주당 대변인 / 대통령당선자 대변인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당 부대표 / 중도통합민주당 최고위원 /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 현 민주당 3선 국회의원(16대, 17대, 18대) /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 국회의원 연구단체 <지역균형발전연구모임>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 /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겸 간사장 / 수도권규제철폐반대 국회의원비상모임 공동대표 / 지역균형발전협의체 회장(국회 측)

* 저서
<80년대 정치현장>(1989년) /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2003년) / <어머니의 추억>(2007년)


Posted by 인터뷰선데이

[프리즘] 동편제 호방함에 명쾌한 뜻...'거목'의 새싹인가  

 동편제 판소리 한마당을 대한 느낌이랄까,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시, 무소속)과의 2시간 여 대담은 막힘없고 호방했다. 구수한 사투리의 호남 말투가 보듬은 뜻은 명쾌했다. 헤어지고 국회 광장을 걸어 나오며 ‘준비된 정치인’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농민국회의원’ 강기갑 민노당 대표가 농민의 절규를 가감(加減)없이 의정 공간에 전달하는 타입인데 비해, 유 의원은 절망적으로 기울어가는 우리 농업의 회생을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궁리하는 ‘농업국회의원’이라 할만 했다. 지역구인 전북 정읍시는 축산을 포함한 농업의 비중이 큰 도농복합지역, 이 도시의 민선시장을 지내며 그는 농업 없이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했다.

 “우리 정읍은요이...”하는 말투가 입에 붙었다. 대여섯 번 듣고 나니 그 말투가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 소문난 친화력의 구성요소이자 발현(發顯)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우리 정읍’ 이야기는 마치 봇물 터지듯 해서, 그대로 ‘정읍향토문화사’ 강좌라고 해서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정읍 지역 맹주로 한 시대 정치를 풍미(風靡)한 전 국회부의장 나용균(1895~1984년), 전 국회의장 김원기(1937년생) 등의 맥을 이을만한 거목의 소질을 그에게서 기대하는 시각이 많다. 소탈하지만, 이로(理路) 정연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알아듣기 쉽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과의 소통’을 위해 좋은 자질이겠다.

 신기하게도 ‘18번’이 강기갑 의원과 똑같은 ‘고향무정’과 ‘유정천리’, 이 노래가 농촌과 특히 정서적으로 관련이 있어서일까. 슬하엔 딸만 셋, 일관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첫째는 서울의 대학, 둘째는 전주의 고교, 늦둥이 막내는 정읍서 각각 학교에 다닌다. 서울로 이사하지 않고 정읍에 살며 KTX로 출퇴근한다. 선거구민과의 약속 중 하나라고 했다. <에디터 강상헌>

[유성엽 의원과의 대담] “한국의 통찰력과 경험이 세계 이끌 지도력이 될 것입니다.”

대담 : 강상헌 언론인 / 여의도통신 편집위원
배석 : 정광모 여의도통신 선임기자
사진 : 한승호 여의도통신 사진기자 / 유성엽 의원실

장소,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유성엽 의원실, 2009년 4월 17일 오후

 전북 정읍시 출신 초선의 무소속 유성엽 의원(49세). 아직 여의도 정가에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행정안전부의 전신인 내무부와 전라북도의 관리(官吏)로 일했다. 민선3기 정읍시장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전북 도지사 공천 경쟁에서 탈락한 후 고향이자 출신지인 정읍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민노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최규성 의원 등과 함께 농업을 지키는 국회의원의 이미지로 요즘 ‘뜨고 있다’고들 한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기사를 모아보니 대부분 농업에 관한 것이었다. 작년에는 한 농업단체가 그를 ‘국정감사 베스트 의원’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강상헌 여의도통신 편집위원: 농업이 유 의원님의 중요하고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선택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유성엽 의원: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농촌의 추억만 있을 뿐, 대부분 농촌 출신 도시 진출자들이 그렇듯 농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읍시장을 지내면서 농업의 어려운 현실에 눈을 떴고, 이를 타개(打開)할 방법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농업을 지역적인 문제, 여러 산업 중의 하나로 보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우리와 나라의 생명이 깃들이는 토대가 어느덧 이렇게 망가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농업 문제가 가장 급하군요.

 -강상헌 위원: 뜻은 그렇다 치지만, 정치가인 유 의원님에게 농업이 얼마나 표를 얻는 일에 도움이 되는지요? 기회비용(機會費用)의 개념도 있지만 농업이 아닌 다른 부문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유성엽 의원: 특히 정치인에게 농업이 인기 없는 주제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강 위원님 질문의 속뜻도 알고요. 그러나 농업의 기반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 짓기 어렵습니다. 또 지금 농업이 쇠퇴해가고 있는 것이 농업 부문의 잘못에 원인이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농업에는 수입과 지출의 단순한 계산 이외의 여러 뜻이 있는데, 이는 국민 모두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나라가 이 뜻을 지키는데 더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보다 큰 이익을 지키는 일이지요.

 식량 공급과 함께 국토의 보전, 쾌적한 환경과 아름다운 풍경의 유지, 전통문화의 계승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 말하는 이런 뜻의 중요성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유 의원의 지역구는 축산을 포함한 농업의 비중이 큰 곳이어서 이런 그의 의도는 상당한 응원을 받는다. 시장 시절 ‘소득농업’ 등의 기치를 걸고 노력해왔던 것을 시민들이 기꺼워했다는 사실을 그는 언급하기도 했다. 기왕 시작한 농업에 관한 얘기, 내친 김에 그에게 ‘대안이 있느냐?’고 묻기로 했다.

 -강상헌 위원: 당장 농민들은 소득이 줄어 파산 지경인데 FTA니 뭐니 해서 울분이 가득합니다. 정부도 그렇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조차 대부분 농업의 뜻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농(殺農)정책을 펴는 것이고요. 묘안이 없을까요?

 ▲유성엽 의원: 우선 실질적인 소득 보전이 될 수 있도록 직불제를 현실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입니다. 농촌 구성원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지요. 유통과정 개선, 농산물 가공산업 발전, 유기농법을 통한 환경농업 정착이니 하는 정책들은 농민들이 버티고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제목만 요란한 탁상행정이 아닌 실제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묘안이나 비방(秘方)은 있을 수 없습니다. 원칙에 따른 정공법(正攻法)해답이지요. (사진 배경은 의원실 벽에 걸린 유망한 지역 화가의 내장산 그림) 

 이 때 그는 자신이 시장 시절부터 구상해온 순환복합영농단지 사업안을 보여 주었다. 민원(民怨) 소지가 없는 너른 들판에 연못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축산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요지다. 돼지 닭의 똥 오줌은 비료와 에너지가 되고, 연못에서는 내수면 어업(민물고기 양식 등)과 연(蓮) 등 수생식물 재배가 가능하다. 연못 외부에서는 사료작물을 비롯한 여러 작목의 경작이 가능하다. 특히 도시 소비자를 회원으로 하는 관광농업 등으로 유통부문을 강화한다. 시안(試案) 수준이지만 상당히 매력적이다. 곧 법안으로 손질해 시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강상헌 위원: 배설물 처리 등의 민원과 환경문제로 곤경에 처한 축산업을 살리면서, 벼 과일 채소 등 전통의 경종(耕種)농업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아이디어군요.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유성엽 의원: 여러 전문가들과 농가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상 가능한 문제점의 해결책도 함께 강구하고요. 관계 기관과 공무원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이를 제시했지만 반응이 없네요. 그래서 아예 법으로 만들어 추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농축산업의 새로운 틀을 짜는 시도지요. 언론에서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정읍 얘기가 나왔다. 고향인데다 시장을 지냈고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우리 정읍’이란 단어가 여러 번 거듭됐다. 풍광 수려한 내장사, 정읍사(井邑詞)로 대표되는 문화예술 이미지,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을 위험을 무릅쓰고 내장산으로 옮겨 지킨 정읍의 의인(義人)들, 동학농민혁명 등 정읍 땅과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아는 부분에 맞장구를 좀 쳤다가 “어떻게 ‘우리 정읍’을 이렇게 잘 아느냐? 너무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어야 했다. 고향 사랑, 유별난 구석이 없지 않다. (사진 상임위에서 이웃 자리 강기갑 의원과 담소)

 -강상헌 위원: 서울로 이사하지 않는다. KTX로 출퇴근한다. 정기적으로 시민들과 ‘광장대화’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는 것이 만만치 않겠네요. 이런 것들은 어떤 뜻이 있는지요?

 ▲유성엽 의원: 서울 살며 간혹 ‘지역구 관리’를 위해 출신지를 찾는 것으로는 유권자들의 뜻과 정서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서울에 살면 아무래도 ‘서울시민’으로서의 생각의 틀을 가지게 되겠지요. 또 거의 매일 KTX로 서울과 정읍을 오가며 접하게 되는 시민들과의 교감, 같은 정읍 시민으로서 만나는 유권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제가 국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강상헌 위원: 출퇴근이 가능합니까?

 ▲유성엽 의원: 아침 6시30분에 집에서 나서면 9시경에 국회에 도착합니다. 2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것이지요. 좀 힘들기는 하지만 읽을거리가 많고,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도 갖게 되니 그 시간이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이 늦게 끝나면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했는데, 일주일에 1~3번 이용하게 되더군요.

 -강상헌 위원: ‘재미없는 시장론(論)’ ‘재미없는 국회의원론’을 자주 얘기하신다고요? 무슨 뜻이지요?

 ▲유성엽 의원: 우스개 소리지요. 정읍시장하면서 재량권(裁量權)은 작게 갖고, 절대 어떤 명분으로든 돈을 받지 않는다는 ‘약속’을 공사석에서 자주 했어요. 어떤 이들이 ‘그럴려면 재미없이 왜 시장 하느냐?’고 하더군요. 시장 자리를 재미없는 자리로 만들면 시장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나 혼자 오래 할 수 있지 않느냐 했지요. 만담이에요. 실제로 ‘멍청한 시장놈’이란 뒷담화도 많았다고 해요. 시장이건 국회의원이건 실제로 힘든 자리지요. 왜 다들 이렇게 힘든 자리를 서로 하려고 야단들인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중에 정치가로 나서기 좋은 부처(部處)’라고 생각해 내무부를 택했다고 했다. 당초 정치가가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답게 느껴지는 사투리 섞인 어투가 ‘정치하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호남 인구가 적어 이 어투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더 큰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야망’의 무심한 표출인가. 하긴 겸양으로 숨길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왜 정치가가 되고자 했느냐는 우문을 한번 던져볼까나. (사진 사과 과수원에서 농민 유권자들과 함께 농사일, 가운데)
  

 -강상헌 위원: 내무부 고위직을 제안 받고도 시장 선거에 나선 것이라든지, 도지사 경선에 나선 것, 탈당까지 하며 국회의원 출마한 것 등은 강한 정치성향의 발로(發露)로 보입니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합니까?

 ▲유성엽 의원: 민주주의 지방자치 등 제도는 지어졌지만 실제 운용에 있어서 이름과 걸맞은 절차와 과실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정치선진화가 시대적 요청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실효성 있는 발언권을 확보하여 적극적으로 국가 운영에 개입하고자 하는 뜻이지요. 필연적인 통일과정의 비용과 부담을 줄이는 것에도 힘을 쏟아야 하고요.

 대한민국이 인류에게 영감(靈感)을 주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그는 가지고 있다. 의미로운 반만년 우리 역사와 민족의 우수성도 그렇지만, 외세에 의한 고난과 전쟁, 분단 등 남은 상상도 못할 현대사의 질곡(桎梏)을 극복해내면서 얻은 경험과 통찰력이 세계를 이끌 지혜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연아 박태환 골프 야구 축구 등의 찬란한 빛으로 언뜻언뜻 비치고 있는 조짐들은 다름 아닌 그 증거다. 다만 ‘정치’가 문제라고 했다. ‘그 문제’의 해결에 나서기 위해 ‘우리 정읍’ 사람 유성엽이 있다는 뜻인가. <에디터 강상헌>

[인터뷰 스케치] 관료 출신 답지 않은 소탈한 멋


 유성엽 의원실에 들어서자 ‘멋진 정치 좋은 세상’이란 편액이 보인다. 서예를 보는 눈이 없는 기자에게도 쭉 뻗으면서 시원하게 돌아간 글씨 맛이 확 당긴다. 강암 송성룡 선생의 글씨인데 전주 일대에서 이름난 서예가라고 한다. (사진 어버이날 행사장에서 선거구민을 만나는 유성엽 의원) 
 의원실 한켠에는 황토로 유 의원과 부인, 딸이 함께 있는 모양을 만든 작은 테라코타가 놓여 있다. 테라코타의 유 의원 모양을 자세히 보니 촌부 모습으로 조각했다. 인터뷰하는 유 의원 모습도 서울대를 나오고 내무부과 전북도 고위직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소탈하다.
 유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25명 중 득표율 2위로 저력 있는 득표력을 자랑한다. 정읍에 방사성연구소와 생명공학분원을 유치한 공로도 적지 않겠지만 깨끗하고 공정한 정읍시정을 펼친 덕이 크지 않나 싶다.
 유성엽 의원이 40대 초반에 민선 3기 정읍시장이 되었는데, 전 정읍시장이 인사문제로 돈을 받았다고 하여 구속되었다. 유 의원은 정읍시장에 출마하면서 ‘깨끗한 인사’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된 후로 500만 원 이상 공사는 전자입찰로 하도록 해 시장이나 공무원이 개입할 여지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리고 공무원 노조와 협의해 인사 관련 기준도 세우고, 정읍시 등에 공무원이 전입하는 순서도 객관적인 전입 순서를 공표해 인사문제를 둘러싼 의혹을 없앴다.
 유 의원은 정읍시민이 공평한 것 같다면서 “제가 정읍시장하면서 투명한 행정 하느라 돈을 벌지 못한(?) 점을 알고서 최소한의 선거비용만을 썼는데도 많은 표를 찍어주었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유 의원은 선거 때 공약으로 민주당 복당을 내세웠고 지역구에서도 복당하라는 여론이 높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3배수’에도 들지 못하고 탈락한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공천과 관련한 ‘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분발과 자기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겠다. <정광모 선임기자>


[유성엽 의원 프로필]

* 학력
전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 경력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전라북도 문화관광국장
전라북도 공무원교육원장
전라북도 환경보건국장
전라북도 경제통상국장
민선3기 정읍시장
제18대 국회의원(전북 정읍시, 무소속)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미래전략 및 과학기술특별위원회

* 포상
국무총리표창
녹조근정훈장

* 저서
<전봉준장군이 100년 만에 깨어난다면!>

Posted by 인터뷰선데이

[시사이슈 인터뷰] '수입' 토플 토익만 시험이냐, '토종' 텝스 토셀도 있다
"우리 '토종' 영어인증시험의 자생력 생각보다 튼실합니다"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미국 대학 수강을 위한 영어능력 측정시험인 토플이나 비즈니스 소통을 위한 영어능력을 재는 토익시험에 내몰리는 것을 영어교육계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게 여겼지요.”

영어인증시험 토셀(TOSEL) 개발자인 국제토셀위원회 이호열 위원장(사진)은 토셀 토익의 아성을 넘어설 수 있는 국제적 신인도의 시험 체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전문가들을 모았다. 인기 토플학습서 <아카데미 토플>의 저자인 그는 ‘책의 인세와 관련 강의로 번 돈 수십억원’을 종잣돈으로 투자했다. 수능 출제 경력 교수들을 중심으로 연구 개발진을 구성했다. 난관 끝에 2004년 토셀시험이 태어났다.

영어습득 수준 별로 5단계로 구분해, 어린이로부터 성인까지를 따로 테스트하는 것이어서 합리적인데다 내용이 우리 사정에 맞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험 주관사인 교육방송(EBS)과 함께 시험과 관련 강의를 진행하면서 먼저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관심의 표적이 됐고, 학교 기관 단체 등의 채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생 영어인증시험 대부분은 이렇게 공교육의 자원 뿐 아니라 유별난 한국 사교육의 역동성까지가 투영된 결과물로 기존 시험에 비해 수요자 친화적이며, 시장 적응 과정에서 꼼꼼한 수정을 거쳐 ‘한국적 영어학습 환경’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종시험의 대표 주자인 텝스는 전범(典範)으로 삼을만한 훌륭한 시험입니다. 나름대로의 굳건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지요. 텝스의 격(格)을 토플이라 친다면 토셀은 토익 정도로 상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토익보다 더 과학적인 시험이라 자부합니다. 우선은 어린 학생들이 토플 토익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뿌듯하고요.”


몇몇 토종시험들이 높은 수준의 경쟁으로 결과적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이나 공교육의 무관심 속에서 이뤄낸 이만한 성과는 ‘기적’이라 칭할 만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토종시험이라는 대안(代案)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도 토플 토익의 비중이 기대만큼 줄지 않는다고 이 위원장은 걱정한다.

“토셀의 경우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응답은 아직 기대 이하입니다. 텝스를 제외한 다른 시험들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를 ‘독립운동’으로 여깁니다. 영어교육의 최종단계인 평가의 주권을 우리가 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념으로 밀고 나가면 수지(收支)도 시나브로 좋아지겠지요. 사회가 우리 토종시험들을 주목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영어망국론’까지 들먹여지는 과열에도 불구하고 토플 점수 등으로 따져본 한국의 영어실력은 실망스런 수준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우리 말글과 영어의 구조와 발음 등이 판이한 점도 영어 익히기에 어려운 점이지만, 생활에서 영어를 활용할 기회가 거의 없는 우리의 언어환경이 영어를 더 어렵게 한다.”고 설명한다.

“영어의 필요성이나, 교역 등 대외의존도가 엄청난데도 얼핏 영어로 말 한마디 꺼냈다가는 ‘너 잘났다’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이중성이 수정돼야 합니다. 자신감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까닭일까요? 복거일 선생의 주장인 ‘영어 공용어 정책’과도 같은 과감하고 전향적인 방법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습용이 아닌 영어TV방송을 도입해 영어생활환경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이제 영어는 지구촌에서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랍니다.” <에디터 강상헌>

[심층진단] 외세의존 과중 영어인증시험...영어교육평가 주권 찾아야
외화낭비 초래하고 자생토종시험 뿌리내리기에도 걸림돌

영어구사능력을 측정하는 영어인증시험의 외세(外勢) 의존이 과중해 외화 낭비를 부르고 국내에서 개발된 영어인증시험의 뿌리내리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영어교육계와 정치권 등이 영어교육평가부문의 ‘주권 회복’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오고는 있으나, 정부 기업 학교 등의 사대주의(事大主義)적 인식과 오랜 관행이 개선 움직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최근 각급 학교와 기업 등이 영어인증시험의 점수로 영어시험을 대체하는 추세다. 영어인증시험을 치르는 이들의 수가 급격이 늘고 있는 이유인데, 작년 한해 최소 3백만명 이상이 이런 시험을 치른 것으로 영어교육계는 추산한다. 한 사람이 한 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증가추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개발 영어인증시험인 토플(TOEFL)과 토익(TOEIC)을 비롯한 해외개발 시험이 국내 전체 영어인증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 정도인 것으로 영어교육계는 보고 있다. 미국의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의 ‘대표상품’인 이 시험들 말고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의 지-텔프(G-TELP), 영국 캠브리지대의 아이엘츠(IELTS) 등이 한국에서 시행되는 비중 있는 해외개발시험인데 이 중 토플과 토익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2백40만명 가량이 외국산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2007년 한해 한국의 토플 응시자 수는 12만4천여명이다. 토플 응시료는 170달러, 최근 시작한 성적우수자인증서 발급비는 추가로 40달러다.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30만원 가까운 돈이다. 2백만명 이상이 보는 토익 응시료는 3만9천원. 좋은 점수를 기대하며 여러 번 시험을 치르는 이도 많아 영어인증시험과 이를 대비한 학원 수강료, 책값 등 대학생들의 부담이 큰 것으로 조사(1인당 영어 관련 비용 65만원, 2008년 서울YMCA)되기도 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외국산 이 두 시험에만 한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천억원 이상이 나가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서울대가 개발한 시험 텝스(TEPS)를 시작으로 국내개발 영어인증시험 시대가 문을 연 지는 10여년. 그동안 토셀(TOSEL 국제토셀위원회 개발) 플렉스(FLEX 한국외대) 메이트(MATE 숙명여대) 펠트(PELT 한국외국어평가원) 이에스피티(ESPT 강남대) 테슬(TESL 한국평생교육평가원) 테포(TEFOW 테포연구원) 등 8개 시험이 영어인증시험 시장에 진출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이 시험들을 ‘토종영어인증시험’이라 부른다. 응시료는 2만~3만5천원 정도다.


이 시험들 중 텝스는 나름대로 선전, 홀로서기의 수준을 훨씬 상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토셀은 주관사인 교육방송(EBS)의 후광과 개발자의 지명도에 힘입어, 또 플렉스 메이트 이에스피티 등은 개발 대학의 힘을 등에 업는 등으로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토셀과 펠트는 초중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시험으로 정평을 얻고 있기도 하다. (사진 국제토셀위원회) 

토종 시험들 중 일부는 응시자와 학부모, 교사 등 ‘시장’의 좋은 반응과 함께 영어교육계로부터도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정 수준 토플 토익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고교와 대학, 기업체들이 이들 토종시험을 토플 토익과 함께 전형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텝스와 토셀 등은 한국에서의 경험과 평판을 토대로 아시아 국가에 진출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어교육 1백년의 전통과 경험의 결실인데다 토플 토익 아니면 발붙일 엄두조차 못 내는 분위기에서 살아남은 시험이어서 외국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개발된 소위 토종시험의 우리나라 시장점유율은 25% 남짓에 불과하다. 일본은 60%, 중국은 95%, 대만은 75% 정도로 우리나라와 판이하다. 관계자들과 토종시험기관들은 우리 전문가들이 출제해 우리 실정에 맞고, 외국에 로열티를 전혀 내지 않는 국내개발시험이 왜 시장에서 해외개발시험에 맥을 못 추는지 안타까워한다.

오래 시장을 독점해오다시피 한 미국 ETS의 ‘토플 토익 아성(牙城)’이 너무 크다는 점이 우선 그 이유로 지적된다. 한 관계자는 영어인증시험을 필요로 하는 학교 기업 기관 등 수요기관의 토플 토익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을 문제 삼았다. 굳이 해외개발시험이 아니어도 될 상황임에도 무조건 토플 토익 점수을 요구한다는 것. 최근 좀 달라지고는 있지만, 토종시험을 전형(銓衡)의 기준으로 삼으면 자기 기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이다.

토플은 미국에 유학하려는 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대학에 그 점수를 제출해야 하는 시험이다. ‘좋은 시험’이기는 하지만, 미국유학과 관계없는 우리나라의 학교나 기업 등이 엄청나게 비싼 응시료와 불편를 부담해야 하는 이 시험의 점수를 왜 굳이 요구하느냐 하는 볼멘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한국 응시자가 너무 많아 이를 물리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불편과 불만도 적지 않다. 한때는 많은 응시자가 이 시험을 보기위해 일본원정에 나서야 하기도 했다.

토익은 일본 대장성의 의뢰로 미국의 ETS가 만든 비즈니스 영어 시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많이 채택하고 있어 정작 이 시험 개발의 당사국 중 하나인 일본보다 응시자가 더 많다. 주로 한국과 일본사람들이 보는데 막상 미국에서는 이 시험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이 시험 점수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응시료 중 상당 부분이 로열티로 미국과 일본으로 흘러 나간다.

결과적으로 미국 ETS의 고객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일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측한다. 한국이 ETS를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고객인 한국의 토플 응시자들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응시자 규모에 맞는 인터넷 기반을 확보하지 않아 시험 중 접속장애가 발생하는 등의 ‘잦은 사고’도 그런 지적 중 하나다. ETS는 미국 대학과 대학원의 외국학생 전형을 위한 각종 영어시험을 연구 개발하는 민간기구다.


일본에는 1963년부터 시행된 영어능력검정협회(STEP)의 영어인증시험 에이켄(EIKEN)이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뿌리 내린지 오래다. 일본 내에서도 그렇지만 해외에서도 일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이 시험을 인정하는 학교가 6백개 이상이다. 토플 안 봐도 외국유학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1987년부터 정부가 직접 대학생용 영어인증시험인 씨이티(CET)를 운영하는데, 학사학위 취득 요건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필수적이며 중국진출 외국기업 등도 이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자국시험이 해외시험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텝스 토셀 플렉스 등 토종시험들이 튼실한 문항개발과 변별력 연구 등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성장이 빠르며, 머지않아 일본이나 중국의 토종시험이 그 나라에서 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토종시험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요기관과 수요자의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 시험기구의 관계자는 말했다.

관계자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도 영어시험이라면 으레 토플 토익부터 연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목적고인 S고 등의 경우 학생들에게 한해 3회 이상 토플이나 토익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기업 공기업 등의 토플 토익 ‘짝사랑’도 도를 넘는다. 각종 정부주도 자격시험도 토플과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텝스와 토셀 정도를 끼워 넣는 경우가 자주 보이기는 한다.

이미 전개되고 있는 토종시험의 실상을 파악하고 각 조직의 필요에 맞는 시험에 관심을 가진다면 영어인증시험 시장의 왜곡 현상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이미 정평 있는 몇몇 시험 간의 점수 환산이 가능한 상관표가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어 토종시험의 추가 채택에 따른 기술적 문제도 제거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토플 토익을 지금처럼 채택하더라도, 텝스 토셀 플렉스 등 우리 시험도 전형도구에 포함시켜 응시자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는 방안이다.

정계에서도 이 문제의 논의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관련 토론회를 열고 “일본과 중국은 국가 주도로 성공적으로 영어인증시험을 개발 시행해오고 있어 영어교육 부문에 환류(還流)효과를 내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 토플과 토익에만 매달려 있어 문제”라고 정부에 개선을 촉구했다.

교과부 추진 국가영어능력시험은 현재 문항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입시용도 외에도 중장기적으로 토익 대체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늦게나마 영어교육평가부문 주권회복의 첫 걸음을 떼고 있는 상황들로 파악할 수 있다. <에디터 강상헌>

Posted by 인터뷰선데이